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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세계로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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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코리안-까레이스끼-정한식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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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까레이스끼
정한식목사
우리는 동쪽으로 이동한 한국인이다. 이 땅의 사람들은 우리를 ‘코리안’이라고 불렀다. ‘고려인’에 뿌리를 둔 말이다. 반면에 서쪽으로 이주당한 한국인들이 있었다. 연해주에 살다가 소련공산당의 민족재배치 결정에 따라 생면부지인 중앙아시아로 옮겨진 사람들, 그들은 스스로를 ‘까레이스끼’ 즉 고려인라고 불렀다.
고려인도 세 부류가 있다. 여러 이유로 북한을 이탈한 사람들로 구성된 ‘북한출신 고려인’이 일할(10%) 정도, 일본의 강제징용으로 사할린에 머무른 ‘사할린 고려인’이 일할(10%) 정도라고 한다. 나머지 팔할(80%)은 1860년 경제적인 어려움을 피해 대륙으로 나선 이들로 ‘대륙의 고려인들’이라고 부른다. 1910년의 한일 합방 이후에는 정치적인 이유로 대륙으로 나가는 사람들이 늘기도 했다. 이들이 오는 8월 우리가 만날 고려인이다. 1937년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에 의해 살던 땅, 연해주를 떠나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 옮겨졌다. 1950~60년대 사이에 소련의 민족이동정책에 변화가 생겼다. 이 때 일단의 무리들이 새로운 터전을 찾아 더 서쪽으로 이동하고 우크라이나에 자리를 잡았다. 구소련 연합의 붕괴는 고려인들의 지정학에 변화를 불러왔다. 자민족중심주의와 내전은 이들을 다시 삶의 터전에서 몰아내었다. 이미 그들에겐 모국어가 되어버린 러시아어를 사용할 수 있는 연해주로 역이주하는 무리가 생겼고 또 다른 무리는 우크라이나 남부로 옮기게 되었다. 우크라이나에 자리 잡은 대부분이 고려인 3,4,5세이다.
미국의 고려인은 2세만 되어도 자리를 잡지만, 우크라이나의 고려인은 5세대에 이르지만 아직도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우리 민족의 근성이라면 해 볼만도 한데, 그들의 상황은 더 척박했던 것이다. 우크라이나 남부 오데사에 협력선교사인 정한규 선교사가 사역중이다. 땀과 눈물과 피를 흘리며 사역한 까닭에 고려인 교회당을 마련했고 신앙의 뿌리를 내리나 했더니, 그 땅은 다시 교회와 고려인을 밀어내려고 한다. ‘나그네’인생은 여전한 것이다.
적은 무리지만 8월에 이들을 만나러 간다. 그들과 그 자녀들에게 언어도 가르치고, 침술도 행하고, 자동차 정비도 하고, 고된 농사일도 도울 것이고, 팀원들이 오랜 기간 준비하며 기도했던 선교사역을 위한 자동차도 마련해 드리고자 한다. 아직도 개척 중이고, 하루살이가 고된 고려인들에겐 오히려 사역이 짐이 되기도 한다고 한다. 그러나 가장 큰 사역은 ‘함께함’이라고 믿는다. 동과 서에 살고, 갖추고 살고 갖추려고 살며, 영어와 러시아어로 각각의 언어를 쓰고, 코리안 혹은 까레이스키라고 불리지만, 하나님 나라로 사는 우리의 정체는 ‘나그네’임을 확인하고자 한다. 고된 삶을 지나 만날 ‘한나라’를 함께 경험하고자 한다. 진정한 독립과 자유는 하나님 나라에서만 가능함을 함께 고백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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